결국 제왕절개 수술 : 첫아기의 탄생 (02편)_EP003

남편과 친정식구들에게 전해진 그 소식에, 친정엄마와 언니는 물론 남편은 또 얼마나 놀랬을까 싶습니다. 급히 친정언니와 엄마가 분만실로 들어와 병원 환자복을 벗기고는 입고 왔던 옷으로 갈아 입혀주었습니다.

남편이 진통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나를 보고는 걱정이 많이 되었는가 봅니다. 의사 선생님께 그러면 구급차를 내 주면 안되겠느냐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바로 앞이 큰 도로라 택시 잡기가 수월할거라면서 택시를 잡아 타고 가라고 합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을 정도의 고통속에서...

남편이 너무하다 싶었는지 '어쩌면 그럴 수가 있느냐' 고 따지려고 하였는가 봅니다. 언니가 나의 상태를 보고는 그럴 시간이 없다고 어서 어떡하든지 빨리 가자고 해서 도로 가로 나왔습니다.

택시! 택시 제발 세워주세요.

양쪽에서 부축을 받고 서 있었지만 하필이면 그 때가 택시가 교대를 해야 하는 시간이라 '빈차' 라고 지나가는 차들은 많았지만 남편이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음에도 그냥 휙휙 지나가 버렸습니다. 

몇 대를 그렇게 보내고 났는데 ‘빈차’라고 불을 켜고 지나가던 택시가 도로 가에 양쪽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서 있는게 안돼 보였는지 세워주었습니다. 

택시들도 긴급할 때는 ‘삐용삐용“하는 소리를 내는 걸 지붕위에 달 수 있는 건지 급하게 경고 신호음을 내면서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11월부터 다음 해 2월말까지는 겨울철이라고 하여 퇴근 시간이 5시였습니다. 일찍 어두워지니 그렇게 할 때였습니다. 교통 혼잡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큰 **병원으로 가 달라고 남편이 부탁하니 정말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참 고맙고 감사한 택시 기사님 이셨습니다. 경황이 없어 어떻게 내렸고 어떻게 수술실로 가게 되었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아! 어서 빨리 이런 고통에서 벗어났으면...

그 당시에는 진통의 고통으로 인해 ’이 고통만 멈춘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서 이 고통만 모른다면 그게 죽음이라고 해도 괜찮았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육신의 고통이라는 것을.

나중에 서야 전해 들은 말이었지만, 종합병원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서 산모의 상태를 확인하시고는 긴급이니 빨리 해야 한다고 하면서, 먼저 수술 시간이 잡혀있던 건강한 산모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술을 시행했다고 하였습니다. 

전산 마취가 시작되었고, 결국 제왕 절개로 우리 아가는 1시간이 조금 안되니 남편의 이름을 부르더랍니다. 아기의 얼굴을 보여주고 성별과 체중을 알려주고는 바로 신생아실로 옮겼다고 합니다. 

산모는 그 이후로도 수술이 끝나 걸린 시간인지는 모르지만 아가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나오더랍니다. 산모는 수술로 인해 꼼짝도 못하다가 3일이 지난 후에야 신생아실을 통해 첫 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정신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눈을 떠 보니 아마도 수술실 대기실이었는지 추웠고 흐릿하게 천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눈을 감았다 떴다를 몇 번 반복하니 시야가 좀 더 뚜렷해졌습니다. 

수술자국이 세로?

힘없는 소리로 간호사 선생님을 불러 "이제 다 끝났나요" 물어보니 그렇다면서 이제 정신이 들었으니 입원실로 갈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나중에야 듣게 되었지만 워낙 긴급일 경우에는 시간이 촉박해서 세로로 절개를 하고, 스케쥴에 의한 수술은 가로로 절개하는 거라고 누군가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경우에는 세로로 길게 난 수술자국이 지금도 여전히 그날의 긴박함을 알려주는 듯 합니다.

종합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과 수술 (삽화)

아기 심장은 잘 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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