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를 안하기로한 잘못된 결정 : 첫아기의 탄생 (03편)_EP004

입원실에서는 제왕 절개를 했다고 하니, 다른 환자분들과 보호자들께서 많이들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수술 후 들어왔던 다른 산모가 고통스러움에 밤새 소리를 많이 질러서 잠도 못 잤다고 하면서...

그런데 밤새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매우 얌전하다고 하시는 말씀에 내 입에서는 "진통이 너무 심했어서 이 정도는 참을만해요"라고 답하니 참을성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게 아닌데...

잘못된 선택과 후회: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으니...

친정 엄마께서는 보통 자연 분만을 하는 경우에는 진통이 시작되었어도 애기가 나오기만 하면 금방 괜찮아졌다고 하십니다. 엄마가 자식들을 1남 6녀를 출산하신 경험이 있으시다 보니 경험에서 우러나오신 말씀이셨습니다. 

기침하려니 너무 아파요.

3박 4일 정도까지는 그래도 나름 견딜 만하였습니다. 다만, 제일 힘들었던 건 전신 마취를 했기 때문에 가래가 생기지 않도록 기침을 해서라도 뱉어내야 한답니다. 

그러나 힘을 주어서 기침을 할 때마다 수술 부위가 너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더 힘든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4일째 인가부터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소변 줄을 빼고는 걸어서 화장실을 다니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입원실 안에는 화장실도 없어서 밖에 있는 화장실까지 가야 했습니다.

어찌어찌 가기는 갔지만 몸을 구부릴 수가 없어 변기에 앉는 것까지 힘들었습니다. 남편이 그 뒷수발을 오롯이 감당해야만 하였고, 지극 정성을 다하여 불평불만 없이 감내해 주었습니다.

젖몸살도 쉽지 않을 텐데...

3일 정도인가 지나니 친정 엄마가 죽다 살아난 딸이 걱정이 되셔서인지 '젖 몸살도 오면 고통스러울 텐데' 하시면서, 직장 생활 때문에 아기에게 젖 먹이는 게 쉽지 않을 테니 차라리 아예 처음부터 먹이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병원에서는 산모에게 모유 수유를 할지 의사를 물어왔습니다. 수유를 원치 않을 경우에는 약을 추가로 처방해 준다고. 그때는 엄마가 해 주시는 말씀도 일리가 있겠다 생각했기에 저 또한 동의를 했습니다. 

그땐 출산 휴가가 나름 다른 직장에 비해 많이 준다는 회사였음에도 60일이었습니다. 그때까지라도 모유를 먹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였습니다. 그 정도로 너무 몰랐고 순진했나 봅니다. 

지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먹였을 걸. 지금은 모유 수유의 장점에 대해 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으나, 그 당시에만 해도 그런 정보들이 그리 흔치 않았고 장단점에 대한 이야기도 딱히 들었던 기억이 없었습니다.

내리사랑이란?

친정 엄마는 딸이 걱정되시니 혹여 젖 몸살로 고생할까 봐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터인데 내 입장에서는 엄마보다는 딸이 우선이라는 것을 키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자식을 낳아서 키우면서 왜 내리 사랑이라는 말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도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였고 어떤 약인지 모르겠지만 병원에서 추가로 처방해 준 약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모유가 나오지 않도록 말린다고 하니 그 약이 독했는지 부작용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입맛이 전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정보의 부재 : 1980년대의 배경

그 시절, 왜 그렇게 모유 수유나 육아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시대적 상황이 고스란히 떠오릅니다. 제 기억으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막 도입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도입 초창기에는 하드디스크도 없는 XT(88) 컴퓨터를 가지고 A드라이브에는 MS-DOS 프로그램으로 부팅시켜야 하는 디스켓을 넣었고, B 드라이브에는 데이타를 저장하는 디스켓을 넣어 사용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디스켓도 잘 망가졌던지, 그동안 열심히 저장해 놓은 데이타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물론 DOS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던 디스크 역시 잘 보관하지 않으면 마찬가지였던 때였습니다. 그러함에도 기술은 날로 진보하며 XT가 점점 사라지고 삼보 컴퓨터라는 회사에서 드디어 하드디스크가 내장되어 있는 AT(286) 컴퓨터를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당시에 AT 컴퓨터와 도트프린터 한 세트 가격이 삼백만원이 훌쩍 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손가락 하나로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검색하는 지금과는 달리, 그 시절에는 정보라는 것이 입소문이나 책에만 의존해야 했던 캄캄한 아날로그 세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참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잘못된 선택, 그리고 후회 (삽화)

그떄 왜 그랬을까? 너무 후회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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